둘둘이오 가을소풍
@둘둘이오 연합회 가을소풍을 계획하고
“여보세요? 저 만경산입니다 ~”
“아, 예, 반갑습니다.”
“11월14일 날 얼굴한번 보자고 전화했습니다. 문경에서 얼굴 볼 수 있겠지요.”
“그럼요 열일 재껴 놓고 가야지요!”
“안녕하세요? 나는 만경산 이라는 사람입니다,”
“미친놈!”
뚜뚜뚜하는 신호음만 들리고 전화는 끊어진다.
나는 졸지에 미친놈도 되고 반가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던 지난 2주간 친구들에게 전화를
돌려댔다.
지난 10월 동문체육대회에서 카페지기의 제안으로 서울, 대구, 안계 회장단들이 더 늙기 전에 친구들 얼굴이나 보자는 의미로 문경 주흘산 소풍을 계획했던 모양이다.
처음 황무영 총무로부터 이런 얘기를 듣고 체육대회에 참석도 못한 나는 앞에서 애쓰는 몇몇 친구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았었다. 내가 특별히 할 일은 없었고 그저 친구들에게 전화로 모임참석을 독려하는 일이라고 생각되어 그렇게 서울뿐만 아니라 대구 안계 친구에게도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코흘리개 시절, 소풍가는 날 몇 일전부터 밤잠이 설치며 설레던 기억처럼 까까머리 소년, 소녀들을 만난다는 설렘으로 좀처럼 잠이 오질 않았다.
안계중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5학년 때부터 권영수 선생님의 지도로 전깃불도 없던 교실에 호롱불을 밝히며 공부했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70년에 입학했으니까 아마 36년 만에 처음 만나는 친구들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아왔고 지금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이런 저런 생각으로 잠을 뒤척이며 새벽녘에 잠깐 잠이 들었는데 중2때 선돌로 소풍갔던 꿈을 꾸고 있는데
“여보 일어나요! ”
“응, 왜 그래 나 지금 소풍 와 있는데” 하며 이불을 뒤집어 덮는다.
“나 원망하지 말아요.”
깨워도 일어나지 않는 나를 그대로 두고 아내는 옷을 입으며 나 교회가요 한다.
그 소리에 이불을 걷어붙이고 벌떡 일어나 시계를 보니 5시다.
매일 하던 것처럼 세수를 하고 무릎을 꿇고 앉아 무사 산행을 기도하고 집을 나섰다.
사당역에 도착하여 1번 출구로 나오니 황무영이와 소병규가 반갑게 맞아 준다.
“차는?”
“복잡해서 주차장에 있다.”
“몇 명이나 왔어?”
“지금 열 서너 명 와 있고 또 여학생들은 오고 있다.”
@관광버스를 타고
버스를 타고 안을 둘려보니 먼저 와 있는 친구들이 반갑게 맞아 준다. 오랜만에 박희고 친구 얼굴도 보인다. 조금 있으니 이상옥회장과 정춘연총무가 손에 바리바리 음식물 꾸러미를 들고 차에 오른다.
일찍 나오느라 아침을 먹지 않는 친구들을 위해 떡, 김치, 밀감, 음료, 마른안주, 이슬, 맥주 등 먹을 것을 준비 해 준 여학생들의 마음 씀씀이가 누님같이 포근함으로 다가오고 있다.
10시에 문경 제1관문에서 대구 친구들과 만나기로 했기 때문에 부지런히 달려가야 한다.
차는 사당역을 뒤로하고 미끄러지듯 빠르게 서울도심을 벗어나고 있다.
황무영 총무의 오늘 산행일정에 대한 간단한 보고와 윤춘근 회장의 감사인사, 한사람씩 돌아가며 얼굴을 익히기 위한 자기소개와 인사, 그리고 처음 참석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학회 참석때처럼 일일이 이름표를 만들어 목에 걸었다.
만경산의 인생살이 만담이 시작되고, 윤춘근 회장의 거시기 논문발표는 서먹한 좌중을 일시에 날려 버리고 배창자를 부여잡고 웃게 만들었고, 맨몸뎅이 쌍방울 2개로 서울에 와 수천억의 자산을 이룬 이기윤 회장의 음담패설을 곁들인 경제 교육이 시작되는데 어느덧 버스는 약속 장소인 문경 제 1관문에 들어서고 있다.
@ 주흘산 산행
10시에 대구와 안계친구들을 문경 제1관문에서 만나기로 했으나 오다가 중간에 휴게실에 잠시 들리고 토요일이라 그런지 차가 막혀서 예정시간보다 40여분 늦게 도착하였다.
버스에서 내려 대구 친구들을 찾았으나 제1관문 쪽으로 올라오란다.
주차장에서 한참을 올라가니 선비 상이 있고 그 밑에 설명이 붙여있다.
옛날에는 과거를 보기위해 영남에서는 반드시 이 길을 괴나리봇짐을 지고 짚새기 신을 싣고 가야한 했던 우리 선조들이 어슴푸레 보이는 듯하다.
제1관문에 도착하니 대구와 안계친구들이 반갑게 맞아준다.
뒷짐을 지고 걷는 모습을 보고 여학생들이 모두 할배같다 그지? 하며 동의를 구하려한다
우리가 할배라면 너는 할미 아이가? 하며 하늘을 쳐다보며 깔깔 웃는다.
그만큼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친구들의 얼굴에는 골이 깊게 패여 있고 머리카락은 어느새 반백이다.
제2관문에 이르러서 저만치 장광규 교감이 교직원들과 산행을 왔다가 하산을 하는 길에 반갑게 조우했다.
오늘 걷는 길은 산행이 아니라 오솔길을 따라 걷는 산보로, 삼관 문으로 이어지는 숲속 길을 따라 걷는 길을 가다가 신성봉을 올려다보니, 산은 암벽과 노송으로 가득 차 있어 가는 가을이 아쉬운 듯, 만추를 느끼며 걷는 친구들과 어울러져 아름다운 한 폭의 풍경화를 연출하고 있다.
@ 함께 한 친구들
서울에서
권용일,이기윤,이상옥,정춘연.이외숙.김연희.김경옥.정경순,박경옥,윤춘근.황무영,사영일,최호근,우현식,윤길용,박희고,소병규, 손호기,장정용(내외),육종영(만경산)21명
대구, 안계에서
권영한,남현채,이광준,김명숙,이종래,박기완,서수용,임명구,김계월,이졍희,김만수,김명오,정소영,박홍규,김채봉,김상득,강성묵,조영수,이봉오,김명자,장순옥,김상기,김정옥,홍태순,김점순, 이두복, 오병희 27명 총 48명이 참석하였다.
@가나안 호텔에서
3시간여 산행 끝에 도착한 곳은 행정구역이 경상북도 문경군에서 충북 괴산군으로 바뀌어 있었고, 주흘산 산기슭에 아담하게 자연환경과 잘 어우러지게 지어진 가나안 호텔에 도착하니
돼지 바베큐를 포함한 뷔페가 땀 흘리며 걸어온 우리들을 반기고 있었다.
늦은 점심을 먹고 테이블을 일렬로 마주보게 정돈하여 돌아가며 일일이 자기소개와 인사를 한다. 친구들 하나하나가 모두 살갑게 느껴진다.
“지는요 해가 한 시간 늦게 뜨고 한 시간 일찍 지는 만경산 기슭에 자리 잡은 단밀면 용암동에서 나고 자란 두메산골 촌놈 육종영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만경산이 이런 모임이 있을 적마다 전화 할 탱게 미친놈이라 해도 좋은께 전화만 잘 받으소 부탁합시데이”
이렇게 웃고 떠드는 가운데 헤어져야 하는 시간이 되었다.
대구와 안계버스를 먼저 보내고 버스를 타는데 하늘에서 우리친구들의 앞날을 축복이라도 해 주려는 듯 눈을 뿌려 주고 있다.
@歸京 버스 안에서
잘 가라 그리고 다음에 만날 때까지 건강하거라, 손을 흔들며 헤어짐이 아쉬운지 가슴 한편이 찡해진다.
버스가 출발하자 이기윤이가 마이크를 잡고 거시기 만담으로 웃음을 자아내고, 노래로 분위기를 띄운 다음 친구들이 한사람씩 돌아가며 노래를 부르는 노래방이 시작되었다.
노래를 들으며 호텔에서 자기 소개할 때 장정용 친구의 말이 되새김처럼 되살아난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육군사관학교에 입학을 했으니까 정확하게 말하면 고졸 후부터 지금까지 군 생활 하면서 27번의 이사를 했고, 군인은 전쟁에서는 고향을 잊어버리고. 전투에 임하면 가족을 생각지 않고, 돌격을 할 때는 자신을 잃어버리고 살아야 하는 것이 군인의 삶이다, 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군에 있는 아들의 모습이 떠올라 숙연해 진다.
세상의 이치는 힘 있는 쪽으로 사람이 몰리게 되는 것이 사람들의 본성인 지도 모른다.
맨몸뚱이로 수천억의 재산가로 자수성가한 이기윤친구의 살아온 생생한 체험담은 돈을 주고도 듣지 못할 귀중한 재테크 교육으로 이번 산행에 함께한 친구들에게는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세상에 자산은 동산, 부동산만이 아니라 사람을 얻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에는 많은 것을 생각게 하는 대목이었고, 또한 수익의 20%는 반듯이 재투자와 사회에 환원하라는 얘기는 앞으로 살아가며 물질관에 관하여 많은 것을 암시해 주고 있었다.
내 삶이 앞으로 얼마나 남았을까!
친구들과 얼마나 많은 시간을 이렇게 함께 할 수 있을까!
내 코에서 생기가 떠나고 초행길로 가는 그날 나는 당당하게 나의 삶을 회계할 수 있을까!
지나간 시간이 후회스럽웠던 삶이 앞으로는 충실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삶으로……
친구들아 앞으로 우리 남은여생을 자주 얼굴 보며 연애하는 기분으로 그렇게 살자구나.
사당역에 도착하여 맛있는 삼치회로 저녁을 대접한 이기윤친구 고마웠고 또한 12월14일 월요일 청산회 모임이 강남 윤춘근 사무실 2층에서 있다는 말쌈을 전하며 함께 했던 친구들 다음에 만날 때 까지 건강들 하시게......2009,11,16 만경산(육종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