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넘고 물 건너...

팔공산에 서서

만경산 2010. 5. 11. 15:35

& 가슴 설레던 날

설렘 속에 간밤을 지새웠다.

누웠던 침대에서 조용히 일어나 서재로 향하다 말고

나는 문득 발을 멈춘다,

항상 열려있던 방문이 닫혀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일까! 나는 머리를 갸우뚱 하며 잠시 생각에 잠긴다.

그때 안방 문이 스르르 열리며 아내가 나온다,

"당신 거기서 뭐 해요?"

그제서야 아들이 방에 자고 있다는 생각이 난다.

천안함 침몰로 온 나라가 슬픔과 분노에 쌓여

비상근무로 외출외박이 금지 되었다가,

두 달 만에 외출 나온 아들과 새로운 집안의 사람들과

처음 만났던 가슴 설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나는 거실에 불을 켜고 성경을 펴고 무릎을 꿇는다.

"주여" 내가 오늘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믿음과 덕을 끼칠 수 있게 하시고, 겸손과 온유와 사랑으로

다가 설 수 있게 도와 주옵소서......

 

& 전철을 타고

기수가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 전철역까지 차를 태워다 준다.

전철을 타고 자리에 앉으며 아직도 자고 있을 친구들에게 전화를 한다.

고맙게도 금방 전화를 받는 친구들이 있는가 하면,

끝끝내 전화를 받지 않는 친구도 있다.

용산역에 도착하여 광장으로 나가니 벌써 몇몇 친구들이 반갑게 맞아 준다.

서울에서는 잠실역과 용산역 두 군데서 전세버스로 출발하기로 되어있다.

출발을 6시30분에 하기로 하였으나 아직도 도착하지 못한 몇몇 친구들을 기다리다

태우고 차는 용산역에서 7시에 출발하였다.

 

& 여주 휴게소

잠실에서 출발한 친구들과 만나기 위해 여주휴게소에서 잠시 쉬어 가기로했다,

휴게실에서 장정용, 권중모와 함께 커피를 마시고 밖으로 나오니 등반대장이

"어서오세요 출발합니다," 하며 빨리 차에 타기를 재촉한다.

차에 타서 자리에 앉으니 오늘 등반를 후원해준 광동제약에서 약 광고를 한다

영업직원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옆 좌석에 얌전히 앉아있던 새댁이

"혹시 만경산님 아니세요?" 하며 대화에 끼어든다.

나는 한참 후배로만 생각했던 분이 바로 "좋은 생각" 이라는 닉네임으로 우리카페에

들어오는 선배님 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 역사의 한편에 서서

 

쉼 없이 달려온 차는 어느새 팔공산 자락의 가파른 길을 오르고 있다.

대구 친구들과 만나기로 한 케이블카 타는

노천 자동차 극장으로 가는 길에 신숭겸 공덕비를 보며

잠시 역사의 한 장으로 여행을 떠나본다 .

"후백제의 견훤과 고려의 왕건이 공산전투에서 치열한 접전을 벌이다 

왕건이 포위되어 생사의 기로에 놓이자,

8장수의 지혜를 모아 신숭겸이 왕건의 옷과 바꾸어 입고

8장수가 적진으로 돌진하였다,

그러자 변장한 신숭겸을 왕건으로 알고

견훤의 군사들이 신숭겸을 쫒자 반대편에서 퇴로가 열리고

그 길로 왕건은 도주에 성공하여 천신만고 끝에 개성에 돌아간다,

그 후 왕건은 후삼국의 통일에 대업을 이루고 고려를 개국하여 왕이 된다.

왕건은 고려의 왕으로서 공산 전투장을 다시 찾아,

자신을 살리고 장렬히 전사한 8장수를 고려개국 8공신으로 추앙하고

신숭겸이 순절한 자리에 무덤을 다시 만들고

'지묘사, 하는 사찰을 세워 이들의 충절을 기리게 하였다.

지금도 매년 가을에 지묘동 신숭겸 무덤과 유적지에서

신숭겸 장군을 추모하는 고려 문화제가 열리고 있다.

천년이 지난 지금도 왕건이 공산전투서 살아남아

도주 길의 지역명 야사들이 생생히 전해 내려오고있다.

공산전투장에서 8장수들이 지혜를 모아 퇴로를 열었다고 하여

지혜를 모은 그 전투장을 지묘동이라 불렀고 퇴로가 열려 가장 먼저 피신 한곳이

지금의 파군재 삼거리에 있는 신숭겸 장군 동상 뒤쪽에 있는

자그마한 봉우리로 처음 피신하여 왕이 살았다고 하여 '왕산' 이다.

왕산에서 파군재 삼거리로 내려와 단숨에 한동네에 도착하니

노인들은 전쟁터에 동원이 되어 없었고

어린 아이들만 마을을 지키고 있어 '불로동' 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불로동을 지나 또 한동네에 접어들어 이제 겨우 위험을 피해

찌푸린 얼굴을 활짝 폈다고 하여 '해안동' 이라 불렸고,

다시 평강동 쪽으로 도주하다 큰 바위가 있어

그 바위위에 잠시 혼자 쉬어 갔다고 하여

바위 이름을 '독좌암' 이라고 전해 내려온다.

다시 평강동을 거쳐 초례봉을 넘어서 한마을로 접어 드는데

날은 어두운데 중천에 떠있는 달이 도주의 길을 비쳤다고 하여

그 고을을 '반야월' 이라고 불렀고 여기서 다시 밝은 달빛 아래로 두주하여

도착한 고을에서야 이제 겨우 살았다고 안심을 하였다고 하여

'안심' 이라는 지역이 지금까지 그대로 불리며 야사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 詩人 이재하

 

나는 그의 詩를 읽을 때 마다 읽는다는 표현보다

씹어 먹는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 같다,

그의 시어, 단어 하나, 한 낱말은,

나의 어린 시절 가난과 한스러운 삶과 아픔이 그대로 담겨있고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나는,

그의 詩를 먹을 때 마다 나의 가슴은 쿵쾅거리고

알 수 없는 그리움에 서러움이 되어

눈에 이슬이 젖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한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생명을 느낄 수 없는 것이 못내 안타까움으로 다가온다.

우리의 삶은 광야같은  세상에 맨몸 하나 달랑 떨어져서

환경의 감옥과 생활의 감옥,시간의 감옥에 얽매여,

아귀다툼으로 처절한 삶의 전쟁을 하다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게 어느 날 어느 때,

홀연히 사라져 가는 것이 아닌가!

이재하!

그는 범부들은 감히 흉내도 내기 힘든

魂(혼)적으로 굉장히 뛰어난 사람임이 분명하다.

사람은 밥만 먹고 살 수 없기에 지, 정, 의를 추구하며

문화생활을 갈구 하고픈 욕망에 사로잡히는 것이 아닌가!

육신의 생명은 음식물에서 에너지를 얻고,

혼(Soul)은 지식과 문화에서 만족감을 얻는다면,

영(Spirit)은 生命을 추구한다.

 

& 공산을 오르며

 

엊그제까지 꽃샘추위로 장롱에 넣어 두었던 겨울옷을 다시 꺼내 입었는데

산 정상으로 올르는 기슭에는 연초록의 신록이 발을 내딛을 때 마다

거친 호흡에 장단을 맞추어 불어오는 하늬바람에 일렁이며 반긴다.

대구 친구들이 준비해 온 김밥과 바베큐를 먹으면서

체추위 회의를 하였으나 장소와 분위기상 진지한 진행을 할 수 가 없었다,

어떻게든 결론을 내야했기에 우선 대구에서

조성래,안계의 오병희 서울 육종영 3人이 체추위 3두 체제 책임자로 하여

모든 것을 이들에게 일임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 친구들아 삶을 연애 하며

 

깍깍머리 미소년, 단발머리 소녀들이 어느새 머리에는 서리가 내리고,

얼굴에는 세월에 삶의 계곡이 깊게 패여 있는 모습이 되어

몇십년 만에 만나니 참으로 만감이 교차를 한다.

이런 친구들의 모습에서 나의 자화상을 보는듯하여 여유 없이 살아왔던,

지금까지의 삶을 뒤돌아보며, 나와 친구들의 남은 시간은

"복에 복을 더하여

삶의 넓이와 깊이를 더하여

지경을 넓히고,

부대끼며 옥죄는 시간들에

연애하듯 즐기며

환난에서 벗어나

근심 없는 건강한

삶이 되기를 기원해 본다...... 2010.5월 11일 만경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