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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고을 광주을 다녀와서

만경산 2007. 5. 21. 10:38

     @금요일 저녁 

 

오늘은 날씨가 하루종일 꾸물꾸물하다, 그러나 기분이 저기압이 아닌것은 아마도 내일은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토요일이기 때문이리라,

우리직장 동료중에 오늘을 마지막으로 출근하는 동료가 있어 퇴근후 환송모임을 갖기로 했다. 모임 장소는 지하철6호선 세절역에  위치한 소문난 돼지야 집에서 하기로 했다,

나는 이 동료를 생각하면 마음이 별로 편치가 않다, 대학원을 졸업하고,약3년간 임시직으로 공직에 들어와 일반직은 고사하고 계약직도 못해 보고 , 자리가 나질 않으니, 떠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본인 말로는 공부를 더 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난다는데 미국에서 학위를 따 온들 그렇게 쉽게 자리가 보장되는것도 아닌데 참 가슴이 답답하다.

나는 마지막으로 떠나는 그 친구에게 위로주를 몇순배 돌리고, 나도 마시지 못하는 참이슬을 연거푸 석잔을 마시고 나니 머리가 핑 돈다.

셀폰이 울려 받고보니 고향후배가 얼굴한번 보자한다.

나는 거절하는것이 도리가 아닌것 같아 직원들께 사정얘기를 하고 종로3가 약속장소로 가기위해 밖으로 나오니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고 있다,

후배와 복집에 앉으니 마시지 못한 이슬 덕분에 속이 울렁거리고 거북해  오랜만에 만난 ,후배한태는 미안했지만 , 일찍 집으로 귀가했다.

 

    @ 5월의 광주

 

광주로 가기위해 아침일찍 집에서  나왔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아직  이른 시간임에도 고속도료가 정체된다,

천안서,공주논산 민자고속도료로 갈아탓으나,  막히기는 맞찮가지다.

수호로 부터 문자가 온다,  우리카페에  6월 모임장소를 집이 아니고 농장으로 올리라는 내용이다, 운전하며 수호에게 전화해도 받질않아 승녕이 희석이에게 전화해도 모두 받질않는다 ,마지막으로 동호에게 전화해 6월 모임장소를 수호집이 아니고 농장으로 정정해 달라고 부탁했다.

광주에 도착하여 시간을 보니 한 시가 지나고 있다,

점심을 먹기위해 한적한 곳을 찾는데," 연기나는 집" 이런 문구가 내 눈을 사로잡는다, 내가 코흘리개 시절에는 밥을 하기 위해 부엌아궁이에 불을 떼서 밥을 했었기에 동네  모든 굴뚝에서 연기가 났었지......

연기나는 집 간판을 보고 한참을 산속으로 들어가 찾아가니 5월의 신록이 한층 더 푸르르고 주변 아카시아 향이 나의 코을 기분 좋게하는 주변경관이 빼어난 곳에 자리 잡고있다,

메뉴는 닭정식으로 시키니 첨에는 닭가슴살과 똥집으로 만든 육회 다음은 볶음 백숙 마지막으로 녹주죽이 나온다, 계산을 하는데 일인분에 만원 참으로 저렴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

 

   @ 아 망월동

 

내가 처음 망월동을 찾은것은, 1991년 당시 함께 근무하던 직장동료가 부친상을 당하여, 상가 고향  집 흑산도에 문상갔다가 ,서울로 돌아 오던 길에 ,들렸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강산이 한번 변한다는 십년 하고도 6년이라는 세월이 더 흐른 지금.

망월동에 가고있는 것이다.

지금은 국립묘지로 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묘지가는 길이 포장도 되지않은 황톳길이 었고 묘도 묘비도 초라하고 교복입은 애띤 학생영정 사진이 가슴을 저리게 했었던 기억이 새롭다.

지금 나는 왜 망월동을 찾아가는 걸까?

나의 중학교 친구였던 단밀생송에 살던 권용하가 진압군으로  참석했다가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고 첨 찾는 광주!

나는 지금 나의 뇌리가 어지렵다.

무엇이 우리의 선량한 시민들을 저토록 무참히 죽어야만 했으며, 진압군으로 참전한 나의 친구는 왜 죽어야만 했을까?

어제는 그렇게도 쏟아지던 비도   내리지않고 구름한점 없는 5월의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은 빛고을 광주 망월동에 하염없이 비추어 이제는 모두를 용서하고

화합하라고 하는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