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넘고 물 건너...

코흘리개 2009 여름 모임

만경산 2009. 7. 13. 14:41

∞ 아옹다옹

 

“여 보 일어나요!”, “응 몇 시 인데 그래?”

“빨리 아침 먹고 기수 오는 데로 민경이 입원하고 있는 원자력병원에도 가야하고 또 예산에 갈려면 서둘려야 하지 않겠어요?”

“뭐여? 나 오늘 초등학교 모임에 가야 하는데...”

“이 양반이 지난주에 가기로 해놓고 등산가서 못가고 또 뭔 무슨 모임이 매주 있는거에요?” 하며 아내는 타박을 한다.

“그러지 말고 기수 오면 오랜만에 아들이랑 모자간 오붓한 데이트도 하고 함께 다녀오면 안될까 ? 좀 봐 주세요 마님” 하며 나는 아내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지갑에서 수표 한장을 꺼내준다.

아내는 수표를 받으면서 이양반아 이제 당신 나이도 오십대 중반이야 집안일도 좀 신경 써요. 그려 이번에만 한번 봐 주세요 맨 날 이번만이지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아내는 포기한듯하다,

민경이는 차도가 좀 있는 거야 ? 그 말에 아내는 돌아서서 눈물을 훔친다,

민경이는 동국대학교2학년에 제학중인 꿈 많은 문학소녀이고 처제의 고명딸이다 , 그런 하나 밖에 없는 딸이 지난 4월에 갑자기 급성백혈병 진단을 받고 3개월째 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것이다.

 

∞ 친구의 차를 타고

 

야 성렬아 어디냐? 응 아직 재광이 사무실이다, 아직 친구들이 오질 않네,

11시에 서울에서 떠나기로 해 놓고 아직 출발도 안했다면 언제 오냐?

나는 대충 떠날 가방을 챙겨놓고 소라의 목에 줄을 메고 집옆 공원으로 산책을 간다,

얼마나 지났을까 쎌폰이 울려 받고 보니 성열이다, 지금 오산 IC나왔는데 어디 있냐?

응 그려 난 서둘려 집을 나오니 저만치에 성렬이의 차가 아파트로 들어온다.

성렬이의 차에는 종님이와 재광이 3명이 타고 있었다. 나는 다른 친구들은? 응 벌써 출발했다, 한다,

우리들의 차는 경부고속도로 청주에서 상주로 새로 뚫린 고속도로에 차를 올려 놓으니 도로에는 차도 별로 없고

시원하게 뚫려있는 도로를 맘껏 달려 속리산 휴게소에서 간단하게 가락국수로 허기를 면하고 있을 쯤 승녕이 한태 전화가 온다 어디냐? 거의 다 왔다. 그래 조심해서 와라 .

 

∞ 언덕위 하얀집

 

모임장소인 승녕이의 집은 위수강이 바로 앞에 유유히 흐르고 있고 마당은 잔디가 깔끔하게 잘 정돈돼 있었고

 병풍처럼 집 주변을 빙 둘려 싼 각종 수목들은 한 여름 오후의 열기를 식혀 주기에 충분하였다,

우리들이 차에서 내리자 먼저 와 있던 동호, 희석, 건호, 명화, 승녕이가 반갑게 맞아준다.

어느새 준비를 해 놓았던지,

 큰 양은솥에는 닭계장이 끊고 있고,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바비큐가 통돌이에는 돌아가고 있다,

명화가 직접 농사지은 각종체소들과 과일들 수박 참외 자두 복숭아 승녕이 집에서 딴 살구 들이 탐스럽게 놓여있다.

명화가 차려주는 닭계장과 바비큐를 먹고 승녕이 집주변을 둘려보니 집에 들어오는 입구에 무덤하나가 눈에 들어와 가까이 가 보니 處士牛峰李公違 南哲 승녕이의 부친이 영명하고 계셨다, 그리고 이층 올라가는 계단 앞에 기념비가 있다.

紀念碑

“여기 父母님의 遺志를 받들어 兄弟들의 友愛를 기리기 위하여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하노라”

2000.12.25일 子 이호녕, 이승녕

이층으로 올라가니 저 멀리 안계벌과 안계중학교가 흐릿하게 시야에 들어온다,

“한발산 줄기 벋어 화산이 되고 위수강 흘러내려 젖줄이로세 안계벌 내려다 보고 우뚝솟아 서 ......중략”

40년이 지난 중학교 교가가 어섬푸레 나의 뇌리를 울린다.

 

∞ 잔디밭의 여흥

 

앞에는 위수강 집주변을 둘러싼 수목들이 마침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가지들을 흔들어 우리들을 반기고 있었고

우리들의 귀를 즐겁게 하는 뽕짝의 노래 소리와 정감이 듬뿍 묻어나는 왁자지껄한 코흘리개들의 목소리는

잔디밭위에 책상으로 테이블처럼 만들어 상을 차려 놓은 각종반찬들과 과일이 짬뽕되어 흥을 돋구며 야외 만찬을 시작한다.

황병철의 사회로 오늘 자리를 마련해준 이승녕의 고마운 말쌈과

 친구들에게 맛있는 것을 먹이기 위해 협찬해준 친구들 신건호: 직접 농사지은 웰빙 보리를 도정하여 1kg씩 포장하여 친구들에게 나누어 줌, 박영서 포항 죽도시장에서 친구들의 몸 건강을 위해 큰 문어를 가지고 왔다,

 문어가 어찌 크고 쫄깃쫄깃 맛있던지 병철이가 친구들에게 돌아가면서 한사람씩 그 소감을 말하라 한다,

 왈“ 두맨 짭짭 원맨 다이 아이 돈 노” 아이가 저리가라 문어 없어지기 전에 한 지름이라도 더 먹을 란다.

김명화 직접 농사지은 복숭아 자두 수박 그리고 꿈에서도 잊지 못할 그 맛 보리개떡과 닭계장의 맛은 초등학교 운동회나 부락대항 때 운동장 한편에서 큰 가마솥을 걸어 놓고 끊여 팔던 추억의 닭계장 바로 그 맛이 였습니다.

신수호 당신은 등치만큼이나 마음 씀씀이도 넉넉했다오. 친구들이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라고 12지간 친구들의 띠에 맞는 숟가락세트 기념품은 오래도록 기억될 의미 있는 선물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언제나 우리 코흘리개들의 모임에 찬조금을 내는 이승녕 이번에도 흔쾌히 모임장소와 경비를 찬조해 주었습니다.

 당신의 넉넉한 마음 씀씀이에 머리 숙여 고마움을 표합니다.

 

∞ 함께 한 친구들

 

언제나 그리운 고향 지킴이 신건호, 김명화, 부산이 멀다않고 달려온 김덕배 김찬규 포항 박영서. 토요일 늦게까지 근무하고 택시로 온 김달규  내가 택시비 주지 못하고 먼저 와 미안허네 다음에 꼭 웬수 갑겠네, 구미 신동호, 이정흥

서울 권성렬 김재광 육종영 신수호 김점술 신경희 육종님 정점숙

대구 이승녕 이희석 김순옥 김윤옥 남명희 권오근 백남열 김옥심 류시오 신경자 이경호 황병철 이남순

밀양 이무화 상주 이용호 31명

 

∞ 그리운 내 고향

 

내일 주일 지키기 위해서는 서둘러 상경해야만 하는데 달규로 부터 전화가 온다.

지금 출발한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가기위해 남열이의 차를 타고 내가 6년간 다니던 위중초등학교에 한번 가 보자고 했다,

 운동장에 잠시 내려 학교를 둘러 보니 운동장은 질퍽하고 교정이 웬지 쓸쓸하고 황량한 느낌이 드는 것은 폐교로 오래 동안 방치해 놓았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지금 시간에 쫓겨 서둘러 올라가는 내 자신의 허둥댐도 한몫 했을 것이다

학교에서 나는 혼자 터벅터벅 마을로 걸어 나오다 마을 입구 에 서 있는 큰 화강암을 보았다,

그리운 내 고향 (지곡) 2007.3.20 이승녕 이라고 되어있다

‘이 친구 돈 쓸 줄 아는군.....’ 혼자 중얼거리며 서 있는데 성렬이가 온다.

나는 성열이 차를 타니 점숙이도 태우고 가야 한다며 다시 승녕이 집 쪽으로 간다,

골목에서 한참을 기다리니 옥심이와 점숙이의 모습이 보인다.

옥심이도 갈려고 아니 아 점숙이 배웅 왔구나 ! 착하기도 해라

7월의 긴긴해는 어느새 만경산 기슭에서 자치를 감춘지 오래되었고 성렬이가 단밀에서 차에 기름을 주유하고 서둘러 상주에서 내륙고속도로에 차를 올려 달린다.

괴산 휴게소에 잠시 들러 커피한잔 마시고 출발하니 그동안 참았던 하늘이 비를 뿌리기 시작한다.

서울에 도착하여 점숙이를 명일동 집에 내려놓고 성렬이 가계가 있는 방배동으로 가기위해 올림픽도로에 들어서니 토요일이라 그런지 도로가 무척 막힌다,

동작동에서 내려 지하철을 타기위해 지하철로 가보니 벌써 차가 끊겼다

나는 동작동 국립묘지 입구에서 택시를 기다렸으나 그곳에서 택시를 탈 수가 없어

이수교 쪽으로 조금 내려와 택시를 타고 교회로 갔다.

 

∞ 삶을 결코 낭만적일 수 없다

 

일년 반 만에 만난 친구들의 얼굴에는 전보다 더 많은 세월의 흔적들이 길고 깊게 패여 있고 나이가 들 수 록 고향이 더 진하게 가슴으로 닦아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귀소본능 때문일 것이다.

이런 저런 생각으로 잠겨있는데 어느새 택시가 용문동 다 왔는데 어디에 세울까요?

아 예 여기서 내리겠습니다. 나는 용문시장에서 내려 교회가 있는 고갯길을 걸어 올라간다.

나는 교회 본당에 들려 무릎을 꿇고 한참을 있다가 일어나 교육관으로 갔다.

잠을 청하기 위해 돌침대에 누웠으나 좀처럼 잠을 잘 수 가 없다

오늘 만난 친구들 얼굴들이 하나 둘 주마등처럼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얼마나 오랫동안 건강한 모습으로 친구들을 만 날 수 있을는지....

친구들을 만나면 종교와 정치 얘기는 하지 않는 것이 철칙이라지만 난 그들의 영혼까지 외면 할 수는 없지 않는가 !!!

육신의 고향이 저토록 가슴 절절이 설레고 소중한것인데 우리들의 영원한 본향을 가지지 못한다면 얼마나 서글픈 일인가......

나는 누웠던 침대에서 조용히 일어나 본당으로 가서 무릎을 꿇고 앉으니 나도 모르게 두눈에서는 눈물이 흐른다 .

사람은 누구나 자기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그 결정에 대해서도 책임이 있을 뿐만아니라

자신이 존재하는 사회에 대해서도 책임이 있다는 생각에 머물자 친구들 영적문제도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우리 삶은 결코 낭만적일 수만 없고 현실에 많은 문제와 부딪쳐 야 한다.

교회 옥상에 올라와 한강을 바라보니 강물이 유유히 흐른다,

2009년,7,4일 코흘리개 여름 모임을 마치고 만경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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